상담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자식 키우고 이제 좀 편해지셨는데, 그 여윳돈을 다시 자식에게 내어주려는 분들을 볼 때입니다.
집도 물려주고, 생활비도 보태고, 급하다면 목돈도 내어주십니다. 그 마음,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20년 넘게 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부모가 가진 돈이 줄어드는 속도와, 자식이 부모를 챙길 수 있는 여유가 늘어나는 속도는 서로 다르게 움직입니다. 자식이 형편이 나아지는 시점과, 부모가 정작 그 돈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할 돈이 따로 있습니다. 오늘은 부모가 끝까지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돈을 세 가지로 정리해드립니다.
[목차]
3위. 내 생활비는 끝까지 내가 관리하기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건 매달 쓰는 생활비입니다. 2025년 국가데이터처 사회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의 79.7%는 본인과 배우자가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고, 자녀나 친척의 지원을 받는 경우는 10.3%에 그쳤습니다. 즉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여전히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지원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자녀가 잠깐 어렵다고 하면, 이 구조가 쉽게 흔들립니다. 매달 20일이면 자녀 통장에 용돈을 보내는 습관이 생기고, 그게 몇 년 쌓이면 본인 생활비를 줄여서 자녀를 지원하는 모양이 됩니다.
65세부터 80세까지 지속한다고 가정하면, 월 30만 원씩 10년이면 3,600만 원, 월 50만 원씩 10년이면 6,000만 원, 월 50만 원씩 15년이면 9,000만 원에 달합니다. 한 달만 보면 크게 안 느껴지지만, 10년, 20년 단위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 생활비는 내가 마련한다는 원칙, 이건 은퇴 이후에도 끝까지 지키셔야 합니다.
2위. 집 명의
두 번째는 집입니다. 자녀 독립, 결혼, 내 집 마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살고 계신 집이나 가진 부동산을 미리 자녀 명의로 넘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 80대 어르신이 상가를 자녀에게 미리 증여했다가, 이후 자녀가 태도를 바꿔 곤란해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재산은 한 번 넘어가면 돌려받기 어렵고, 그 과정에서 가족관계까지 멀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일을 막으려면 재산을 넘길 때 조건을 명확히 정해두라고 조언합니다. 한 상속 전문가는 자산을 물려줄 때 통제권, 계약, 비용 절감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같이 챙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매달 얼마씩 부모 계좌로 보내겠다는 내용, 정기적으로 찾아뵙겠다는 약속, 조건을 못 지키면 재산을 돌려받는다는 조항까지 문서화해두는 게 권고됩니다. 쉽게 말하면, 재산을 넘기더라도 언제 어떻게 넘길지는 부모가 끝까지 결정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집을 넘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넘기더라도 통제권을 완전히 놓지 말라는 겁니다. 자녀의 결혼, 내 집 마련이 안타까워서 무리하게 빚까지 내가며 목돈을 내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지출은 노후를 불안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집은 부모가 갈 곳이 있어야 비로소 부모의 집입니다. 명의를 넘기든 안 넘기든,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그 집에서 나갈 일이 없다는 확신은 반드시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1위. 병원비·간병비 예비자금
의외로 가장 중요한데, 가장 쉽게 놓치는 돈입니다. 2025년 12월 기준 국민연금공단 공표통계에 따르면 노령연금 전체 평균 수급액은 월 68만 원이고, 20년 이상 가입자는 월 112만 원입니다. 월 평균 68만 원으로 병원비와 간병비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상당히 빠듯합니다.
자녀에게 매달 30만 원씩 지원하면, 10년이면 3,600만 원이 됩니다. 이 돈은 본래 70대 후반 이후 병원비와 돌봄비의 완충 자금이 될 수 있는 돈입니다. 자녀에게 주는 돈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 돈의 목적지가 먼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노후자금을 계산할 때는 지금 당장의 지출만 보면 안 됩니다. 배우자의 질병, 본인 수술, 장기 약 복용, 갑작스런 돌봄 서비스 비용까지 한꺼번에 닥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2025년 발표한 노후 생활비 기준을 보면, 부부 기준 최소생활비는 월 248만 원, 적정생활비는 월 350만 원이며, 1인 가구는 최소생활비 월 192만 원, 적정생활비 월 280만 원입니다. 75세 이후에는 생활비보다 의료비와 간병비 비중이 더 커집니다.
이럴 때 현금성 자산이 이미 줄어 있으면, 선택지가 급격히 좁아집니다. 한 번 큰 수술을 하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가면, 월 100만 원 이상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돈은 다 나눠줘도, 이 돈만큼은 마지막까지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해두셔야 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소득 상황에 맞는 병원비·간병비 예비자금을 지금부터 따로 만들어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하실 일
최근 1년간 자녀 계좌로 나간 돈을 다 더해서, 그게 몇 년 치 병원비에 해당하는 금액인지 계산해보시기 바랍니다. 부동산을 자녀 명의로 넘기실 계획이 있다면, 조건을 문서로 남기는 절차부터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통장에서 병원비와 간병비 용도로 따로 떼어놓은 돈이 있는지 확인하시고, 없다면 지금부터 따로 만들어 두시기 바랍니다.
맺음말
정리하겠습니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79.7%는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으니,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키셔야 합니다. 집 명의를 자녀에게 넘기더라도 통제권은 부모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합니다. 월 30만 원씩 10년을 지원하면 3,600만 원인데, 이 돈이 목적지 없이 빠져나가면 정작 필요한 병원비와 간병비가 부족해질 수 있습니다. 부모의 노후가 무너지지 않아야, 자녀도 끝까지 부모를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