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한국의 역사적인 금융사건과 실직자 수

쇠젓가락을 구부려서 손에 끼고 달려드는데 너무 무서웠습니다. 아,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IMF 때 아찔했던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 가게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면 안 되니까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경찰이 오고 아주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 대한민국이 망했구나.

제가 직접 겪은 1997년 IMF 이야기입니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1997년,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은행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포장마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뉴스에서 이상한 말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환율이 올랐다, 외환보유고가 줄었다, 외국에서 돈을 안 빌려준다더라. 솔직히 스무 살이던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람들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신문 보는 얼굴도 다르고, 지하철 안 분위기도 다르고, 시장 분위기도 달랐습니다. 사람들이 웃지를 않았습니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5조 원대 부채로 무너지며 대마불사 신화가 깨졌습니다. 3월에는 삼미그룹이, 7월에는 국내 2위 자동차 기업이던 기아자동차가 부도를 냈습니다. 지금의 기아와는 주인이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 망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회사였습니다. 결국 11월,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에 550억 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런 회사가 무너졌다는 뉴스가 나오던 날, 거리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근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경제는 망하는데 저희 포장마차는 장사가 더 잘됐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며칠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었던 겁니다.

회사에서 잘린 사람, 거래처가 부도난 사람, 사업이 망한 사람, 집에 들어가면 가족 얼굴 보기가 미안한 사람. 그 사람들이 전부 포장마차로 모여들었습니다. 술이라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던 겁니다.

그때 손님들,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평소 같으면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들이, 그날은 말도 거의 안 했습니다. 앉자마자 소주 두 병, 세 병을 계속 마셨습니다. 안주도 거의 안 먹었습니다. 그냥 술만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혼잣말처럼 한마디씩 했습니다. “회사 끝났어.” “오늘 잘렸어.” “거래처 다 망했어.” “이제 어떻게 살아.”

스무 살이던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람 얼굴만 봐도 세상이 무너졌다는 건 느껴졌습니다.

그 무렵 사람들은 정말 예민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어갈 말도 그날은 싸움이 됐습니다. 술잔 하나, 눈빛 하나, 말 한마디로도 주먹이 오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도 평생 잊지 못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손님 둘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욕을 하더니, 갑자기 한 사람이 식탁 위에 있던 쇠젓가락을 집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천천히 구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포장마차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구부린 젓가락을 주먹 안에 쥐더니 상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빛, 지금도 기억납니다. 술 취한 눈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찌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던졌습니다. 뒤에서 다른 손님들도 달려들어 겨우 말렸습니다. 만약 그때 조금만 늦었으면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그날 배운 게 있습니다. 경제위기는 주식 차트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사람 얼굴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뉴스에서는 환율이 얼마 올랐고 외환보유액이 얼마 남았고 기업이 몇 개 부도났다고 말했지만, 거리에서는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고 가장이 무너졌고 가족이 울었고 술집마다 한숨만 가득했습니다. 그게 진짜 IMF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뉴스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IMF 구제금융, 환율 폭등, 외환보유고 고갈 같은 말만 나왔는데, 저는 뉴스보다 포장마차가 더 정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손님 숫자가 늘어나고, 술병이 더 빨리 비워지고, 웃음소리가 사라졌습니다. 그게 진짜 경기였습니다. 경제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표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은행원이 됐습니다

그때는 은행 창구 안을 못 봤지만, 은행원이 되고 나서 선배들한테 IMF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은행도 무서웠고, 오늘 문 열면 내일 없어질지 몰랐고, 창구에서 우는 고객도 많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포장마차에서 봤던 그 사람들 얼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는 은행에서 20년을 일했습니다. 그동안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2024년 홍콩 ELS 사태까지 창구에서 직접 지켜봤습니다. 신기하게도 사건은 다 달랐는데, 사람은 항상 똑같았습니다.

IMF가 터진 이유, 사실 하나가 아닙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기업들은 빚으로 몸집을 계속 키우고 있었습니다. 은행도 돈을 빌려주기 바빴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데, 기업은 돈을 벌어서 투자한 게 아니라 빌려서 투자했습니다. 은행도 “대기업인데 망하겠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 한보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한보 하나 망했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삼미, 진로, 대농, 기아가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믿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달러가 순식간에 빠져나갔습니다. 환율은 폭등했고 원화 가치는 폭락했으며, 나라가 가진 달러는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나라가 돈을 빌린 겁니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1997년 초 850원대에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11월에는 1,100원대로, 그해 12월 최고점에는 1,965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불과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환율이 두 배 이상 뛴 셈입니다.

IMF 위기의 구조적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기업의 과도한 부채 경영, 즉 빌려서 투자하는 구조였다는 점, 은행이 대기업이니 망하지 않을 거라 믿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내준 점, 그리고 외국 자본이 급격히 이탈하며 달러가 고갈되고 환율이 폭등한 점입니다.

진짜 피해는 환율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IMF를 환율 이야기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진짜 피해는 환율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실업자가 178만 명까지 갔습니다. 1999년 말까지도 100만 명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평생직장이라고 믿었던 대기업 직원들도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1997년 초 50만 명 수준이던 실업자 수는 위기 직후인 1998년 초 120만 명으로 늘었고, 1998년 최고점에는 178만 명까지 치솟았다가 1999년 말에도 100만 명 이상을 유지했습니다.

은행도 살아남기 위해 합쳐지고, 없어지고, 팔렸습니다. 그때 사라진 은행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충청은행은 하나은행에, 동남은행은 주택은행에, 경기은행은 한미은행에, 대동은행은 국민은행에, 동화은행은 신한은행에, 장기신용은행은 국민은행에 각각 합병됐습니다. 외환은행 등은 외국자본에 매각됐습니다. 외환위기 직전 25곳이던 은행은 18곳으로 줄었고, 금융기관 전체로 보면 628곳이 퇴출됐으며 금융권에서만 1만 명 이상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항상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불안하면 급하게 팔았습니다. 손실이 나면 무리하게 만회하려 했습니다. 남들이 산다고 하면 뒤늦게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은행 창구에서 20년간 상담하며 지켜본 바로는, 급하게 파는 패닉셀과 무리한 만회 시도가 가장 많이 반복되는 실수였고, 뒤늦은 추격 매수도 흔했습니다.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IMF를 과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기는 항상 이름만 바뀌어서 다시 옵니다. 1997년에는 IMF였습니다. 2003년에는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달했습니다. 2008년에는 리먼브러더스發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2011년에는 저축은행 16곳이 영업정지되며 서민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로 전례 없는 경기 충격이 있었습니다. 2024년에는 홍콩 ELS 사태로 대규모 투자자 손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이름으로 반드시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하나는 변하지 않습니다. 위기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돈을 지키는 사람은 정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평정심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옛날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때 제가 본 포장마차, 그때 선배들이 겪은 은행, 그리고 제가 20년 동안 창구에서 만난 고객들. 결국 모두 같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다음 위기를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맺음말

사건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사건에서 내 돈을 지키는 원칙 하나를 가져가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다음 이야기로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때 저는 신입 은행원이었고, 창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 겪었습니다. IMF에서 배운 원칙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경제위기는 차트가 아니라 사람 얼굴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위기는 이름만 바뀌어 반복됩니다. 위기 때 사람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돈을 지키는 사람은 정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평정심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1] 스페셜경제 – ‘IMF 20년’ 흥망성쇠의 기업사

[2] 국가기록원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IMF 외환위기 극복

[3] 위키백과 –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4] 경향신문 – 외환위기 그후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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